*사진은 미디어자료시의 노회앨범을 참고하세요.
1. 양성교회 이 기 종.
일본 오사카교구를 다녀오고 나서..
먼저 이 모임에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과 경기남노회, 오사카교구회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모임에서 정말 많은 감동과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생각했던, 기대했던 그 이상의 것들을 얻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전 세계에서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사카 교구 사람들은 우리를 너무나도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우리를 위해 많은 것들을 배려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첫 날 다 같이 모여서 조선학교에 대한 발제를 듣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발제를 듣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발제를 듣기 전에는 조선학교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없었는데 발제를 통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국인인 나도 그동안 이렇게 무심했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본 사람들이 이들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동이었습니다.
발제와 토론이 끝나고서 우리는 앞으로 함께 할 홈스테이 사람들과 저녁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이에도 불과하고 너무도 친절했고 미리 연습해온 서툰 한국말로 우리에게 말을 거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각자 홈스테이 집으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모두가 친절한 배려덕분에 하나의 불편함 없이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 우리는 전날 토론했던 조선학교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조선학교 학생들은 인사성이 밝고 유쾌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수업을 참관할 수 있었는데 조선학교 학생들의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태도에 많이 놀랐습니다. 교실을 둘러보며 조선학교 학생들의 글과 그림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들을 보니 학생들의 순수한 마음, 조국과 통일에 대한 소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작은 것에서도 감사함을 느낄 줄 알았고 행복해 했습니다.
수업 참관을 마치고나서 조선학교 학생들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공연은 마치 전문 프로 선수들이 준비했듯이 완벽했고 깔끔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그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사람들과 조선학교 방문 후기에 대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일본 사람들과 토론을 하며 느낀 것이 있다면 일본 사람들은 자신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잘 헤아리고 배려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생각의 깊이가 깊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뒤에 일까지 생각하는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꼭 배워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느꼈던 것이 있다면 이들과 조선학교 그리고 위안부, 과거 역사적 사실들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을 때 이들은 자신의 입장, 자신의 이익이 아닌 약자들에 편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고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에서 만큼은 이들의 삶의 모습이 예수의 삶의 모습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세 번째 날에는 각자 자신의 홈스테이 일본 교인들의 교회에 방문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작고 아담했습니다. 교인들 대부분은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이었고, 젊은 청년과 아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인 모두가 젊은 청년들과 아이들 못지않게 열정적이셨고 마음이 따듯했습니다. 저는 이상국목사님과 함께 카와기쉬 키요시상과 와다 사나이상의 교회를 방문했었는데 예배와 교류시간이 끝나고 교인들은 우리를 위해 일본어로 찬양을 불러주며 축복해주었습니다. 비록 일본어로 찬양을 했기에 뜻을 알 수는 없었지만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근래에 가장 마음이 편안하고 따듯한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서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우리가 진행해온 모임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나누며 친교를 갖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웃고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번 모임에 함께한 많은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 했습니다. 아마 내년에는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방문하게 될 텐데 열심히 준비해서 우리가 받았던 대우와 배려 못지않게 그들을 배려하고 편히 지내다 갈 수 있게 도울 것입니다.
이번 모임은 우리들에게 많은 의미와 과제를 안겨주었습니다. 먼저 이번 모임을 계기로 더 활발한 경기남노회 청년들의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 모임으로 모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번 모임을 시작으로 다음 2기 3기 정기적으로 교육하고 준비하여 더 원활하고 준비된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모임은 남노회와 오사카교구회의 관계발전 뿐만 아니라 경기남노회의 청년모임과 활동에도 활발한 에너지를 불어 넣어줄 것입니다.
또한 일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약자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만남을 가진다면 더욱더 원활하고 즐거운 모임이 될 것입니다.
이번 모임을 통해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고 느꼈습니다. 다시 한 번 남노회와 오사카 교구에 감사의 뜻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 가곡교회 박 종 명
이번 오사카 교구와의 교류를 통해 조선학교와 차별에 대한 저항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책임감’이었다.
내가 느낀 ‘책임감’은 재일교포와 같은 민족으로서 느끼는 동포에의 책임감일 수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같은 민족을 넘어서, 이념을 넘어서, 같은 인간으로서의 책임감을 느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 사이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기본권이 있다. 평등, 자유로 대표되는 이러한 기본권은 쉽게 말해서 종교, 이념, 인종, 계급을 넘어서서 누구든지 똑같은 대우를 받고,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러한 차별과 자유에 대한 억압에 대해서는 마땅히 싸워 나가야 하는게 우리의 책임이자 공동체 의식이다.
오사카에 방문하기 전에는 자료를 읽으면서도, 공감이 쉽게 가지도 않을뿐더러 한국 사회에서 23년간 살아가면서 뿌리 깊게 의식 속에 박혀버린 ‘이념’에 대한 트라우마
가 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하지만 오사카에 직접 방문해서 오사카 교구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먼저 그들의 책임감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음날 오사카에 있는 조선학교를 방문하고, 조선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보니,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이러한 수많은 생각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정체성’이었다.
정체성의 문제는 단순히 국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으로 태어나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자존감과 연결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이고도 강력한 인간의 관념이다. 그러한 정체성에 대해서 일본사회 내에서 받는 차별과 무시, 그리고 같은 민족에게서도 제대로 편입되지 못하는 재일조선인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세상이었다.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하여 기본적인 교육권조차 누리지 못하는 재일조선인들은 점점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대로 수십년, 아니 수년이 흘러간다면 이러한 어려움은 더욱 가속화될 것 같아 보였다.
이러한 차별에 대해서 저항하는 오사카 교구 교인들과 그밖에 일본의 지식인들을 보면서 같은 민족으로서 이러한 사실도 몰랐던 내가 너무 창피하게 느껴졌다.
한국사회에서는 재일조선인 문제가 두각될 때마다 이념논쟁과 역사적 논쟁으로 제대로된 여론형성을 하지 못하고 항상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재일조선인들은 더욱 어려운 환경속에 빠졌고, 결국에는 일본 사회 내에서 이들의
정체성과 차별에 대한 저항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당연히 같은 민족으로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을 여태까지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 사회 내에서 극심한 이념문제는 재일조선인들에게 있어서 그리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조선학교’는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끌려와 일본 내에서 수십 년을 살아가면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조국에 대한, 같은 민족에 대한 ‘한’을 품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불굴의 의지였다.
그러한 의지로 60년 넘게 지켜온 민족교육에 대한 열정과 의지에 대해서 우리는 그저 이념이라는 좁디 좁은 프레임안에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학교의 문제는 단순히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문제가 아니다. 조선학교의 문제는 뼈아픈 조선의 역사, 일제강점기의 역사의 연장선상이고, 한 민족에 대한 존립에 대한 문제이고, 한 인간의 정체성의 문제이며, 우리나라의 통일과 미래에 대한 문제이며,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의 문제이다.
이번 오사카교구와의 교류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깨닫고 느끼고 돌아왔다.
교류를 통한 책임감을 가지고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나갈 것이다.
3. 신갈교회 이 하 희
11월 14일~17일. 3박 4일간의 일정과 그 속에서 일어난 여러 변화들은 나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11월 14일 금요일. 오사카교구와의 청년교류가 시작되었다. 인천공항에서 일찍부터 모인 우리 한국 청년들과 목사님은 모두 피곤한 모습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이번 프로그램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며 비행기에 올랐다. 2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나니 간사이공항에서 오사카교구 목사님들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아베노 하루카스를 소개해주시며 점심을 대접해주셨다. 그러고 나서 함께 교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이 참 귀중했던 것 같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많은 감정을 나누었다. 이전까지는 언어가 다르면 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그 때 그 생각을 깰 수 있었다. 서로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제를 나눈 후 오사카 크리스찬 센터(OCC)로 가서 다음날 일정을 위한 준비를 했다. 조선학교 이해를 위한 공부와 토론이었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일본인에게 배우는 역사는 내가 쓰지 못하고 있던 반쪽을 깨워주는 느낌이었다. 통역의 도움으로 우리는 서로 토론을 하며 의견과 마음을 주고 받았고, 그 가운데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일정이 끝나고 우리 청년들은 각자 홈스테이 가정으로 향했다. 공식 일정 외에는 통역이 붙지 않아서 걱정했지만 홈스테이 가정에서 정말로 많이 배려해주시고 신경써주셔서 감사했다. 첫날이라 고단했지만 가슴에는 사람들의 마음과 양식을 가득 채운 채로 따뜻하게 하루를 마무리 했다.
일본에 온 지 이튿날인 15일에는 이꾸노 조선초급학교를 방문했다.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함께 등교하여 아이들 공개수업에 참여하였다. 1~6학년까지 조선학교에서는 어떻게 수업을 진행하는지, 교과서의 내용은 어떤지 등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대화도 나누고 피아노도 치며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현지에서 직접 보니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느낀 바가 많았다. 아이들이 티 없이 밝은 모습을 하고 있어 사회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현재 학생들은 4~5세대 아이들로 일본어를 생활 속에서 제1의 언어로 쓰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학교에서 한국어를 ‘국어’로, 일본어를 ‘일본어’로 배우는 모습을 보며 자녀들을 조선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조선학교는 오사카에서 규모도 크고 시설도 좋은 편이었다. 다른 지방에 있는 조선학교들은 여전히 시설이 열악하다고 했다. 수업을 참관하고 아이들의 공연이 있었는데 정말 다재다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정부에서 지원하여 이 아이들을 키워주면 미래에 훌륭한 재원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일본의 현실에서는 어렵다는 걸 알고 마음이 아팠다. 이꾸노 조선초급학교의 어머니회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이들이 과거의 역사로 인해 아직까지도 차별을 받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에 슬퍼하셨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기독교인으로서 잘못된 일을 바로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알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잊지 않고 실천해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학교에서 어머니회가 준비해주신 김밥과 떡국을 먹고 우리는 다시 토론을 하였다. 일본 오사카 산업대학교 후지나가 다케시 교수님과 함께 조선학교의 실상과 문제에 대해 의견을 공유했다. 솔직하고 진지하게 한국과 일본, 그리고 개인과 개인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진지했던 둘째 날의 주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신사이바시(心斎橋)로 향했다. 일본 최고의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면서 타코야끼도 먹어보고 일본 여행에서 필수라는 구리코 간판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이렇게 둘째 날 오후에는 일본의 관광지를 돌아보며 긴장을 풀었다. 저녁은 각자 홈스테이 가정으로 돌아가서 해결하였다. 나의 홈스테이 가정은 나를 회전초밥집에 데려가 주었다. 한국인들이 일본에 와서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미리 추천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 마음에 너무나도 감사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궁금했던 사회문제와 신앙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 했다. 오사카교구 청년교류 프로그램이 어느 한 시간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없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셋째 날은 주일일로 우리는 각자 홈스테이 가정이 섬기는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렸다. 나의 경우는 예배를 드리고 함께 성탄절 준비를 하였다. 말은 100% 통하진 않았지만 하나님 안에서 함께 하는 시간을 보냈다. 일본 교회도 한국 교회와 마찬가지로 고령화 된 모습으로 청년들이 거의 없었다. 일요일 점심은 교회에서 교인들과 함께 나누었고 점심 식사 후에는 목사님께서 테제에 대하여 말씀해주셨다. 또한 일본 기독교단이 역사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도 공부하였다. 교회에서의 일정이 끝난 후 우리는 다시 모여 지금까지의 교류 프로그램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전반적으로 느낀 것은 감동과 울림이었다. 일본의 기독교단은 종교활동 뿐만 아니라 사회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음에 놀랐다. 특히 그 분들은 본인들과 직접적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선학교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올바른 의식으로 싸우고 있다는 것이 나를 반성하게 했다. 우리나라는 30%정도 되는 기독교 단체가 역사적 사명을 위해 사회에서 그다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또 행사하려고 하지 않는 반면에 일본 기독교단은 1%도 안 되는 수로 일본 사회에 비교적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그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나를 깨어나게 했다. 토론의 시간을 마치고 다 같이 마지막 일정인 저녁 식사를 나누었다. 마지막 저녁 식사인 만큼 서로가 헤어지기 싫었던 것인지 우리는 꽤 오랫동안 식사 시간을 가졌다. 비록 3일이었지만 항상 같이 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터라 우리는 꽤 정이 들어있었다. 오사카교구와의 마지막 일정까지 마치고 우리는 호텔로 가야했다. 마지막 밤은 홈스테이가 아닌 호텔에서 묵었다. 홈스테이 가정과도 아쉬운 작별을 하고 또 연락 하자며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공식 일정을 마무리 한 후에 우리 청년들끼리의 시간을 가졌다. 오사카 시내를 관광하며 우리 청년들과도 더 깊은 교제를 나누고 호텔로 돌아와 일본에서의 마지막 잠을 청했다.
돌아오는 날에는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바로 공항으로 떠났다. 전날 오사카교구 사람들과의 헤어짐도 슬펐지만 공항으로 가는 길도 마음이 허전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우리 청년들, 그리고 목사님과도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사카교구 목사님 세 분께서 간사이공항에서 우리를 끝까지 배웅해주셨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짐을 챙겨서 각자 본인들의 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도 서로 다음에 또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3박 4일 간의 활동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기독교인으로서, 학생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많이 느끼고 변화되어 왔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는 걸 확신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미래도 더욱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