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노회앨범을 참고하세요.
오사카에 다녀왔고 그 곳에서 오사카 교구의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들을 만나 교류 할 수 있었습니다. 매우 친절하고 준비가 철저했던 그들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마지막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한국의 시선으로 보기에 매우 예의 있는 모습으로 우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그램과 일정들이 교회간의 교류로서 많은 것을 고려해 짜여 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짧지만 이렇게 강렬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아마 그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공항에서 만난 두 분의 목사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고 또 한국어로 안부를 묻기도 하며 반겨주었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서둘러 두 분의 목사님들과 기차를 타고 ‘텐노지’라는 번화가로 가게 됩니다. ‘텐노지 역’의 출구로 나가며 우리는 4명의 오사카 교구 관계자 분들을 더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 또한 앞선 두 분의 목사님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한국어로 인사해 주었고. 바로 이어진 점심 식사에서도 계속해서 손에 쥔 두꺼운 프린트 물을 뒤적이면서 우리에게 계속되는 질문을 해 주었습니다. 언어에 대한 그들에 준비에 감탄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준비 되지 못한 나 스스로를 질타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라도 노력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영어에 손짓, 발짓, 온몸을 동원해가며 이런 저런 질문과 답변을 점심부터 관광이 이어지는 4시간 정도의 시간동안 주고받습니다. 이 후 오후 5시 정도가 되어 오사카교구의 센터로 이동해서 마련된 회의장 같은 공간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들은 더 많은 오사카 교구의 목사님들과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단지 인사를 위해서 몇 시간이 되는 거리를 기꺼이 와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공간에 모여 우리는 통역을 해주시는 분들을 필두로 하여 각자의 인사와 소개를 하였고 또한 서로에 대한 간단한 질문을 주고받게 됩니다. 일정 후 매일의 밤과 중요한 프로그램 후에는 이렇게 대화가 이어지는 나눔의 자리가 마련되는 프로그램 방식이었습니다.
첫째 날은 다음 날에 방문하게 되는 ‘조선학교’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둘째 날은 조선학교를 다녀와서의 감상이었습니다. ‘조선학교’는 사실 이 전체 일정의 메인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일 두 나라가 공통으로 관심을 가지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 ‘조선학교’로써 서로의 많은 의견과 생각이 오가며 서로가 생각하는 하나님나라의 일과 그 가치관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알게 된 ‘조선학교’의 상황은 열악했습니다. 해방 이 후 일본의 남게 된 조선인들이 통일된 조국을 꿈꾸며 일본에 남아 일본 각지에 세운 것이 이 조선학교입니다. 왕성하던 이 ‘조선학교’는 최근에 와서는 일본 정부의 지원이 끊긴 상태입니다. 500개를 넘던 이 학교는 일본 정부의 탄압 속에서 250개교로 줄어들고 최근에 지원이 끊긴 상태에 와서는 60개교 정도만이 남아 있을 뿐이며 그 마저도 학부모들과 그들의 후원하는 몇 개의 단체로 힘겹게 운영이 되는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방문해서 본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생님들도 봉사하는 학부모들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선학교’의 아이들은 밝고 넘치는 에너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수업을 참관하며 생각한 것은 “나 어릴 때 저랬었는데”, “진짜 똑같고 비슷하다.”였습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북한 성향이다.”, “빨갱이다.”, “김정일을 찬양한다.”하며 정치적인 색깔을 이야기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학생인 아이들의 수업을 참관하고 또 쉬는 시간이면 기를 쓰고 그 아이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하며 뼈 속까지 느낀 것은 그냥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일본과 한국 혹은 북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 조선학교 아이들의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고 무언가 미안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국적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아니 국적을 가지지 못 합니다. 어떤 정부에도 속하지 못하고 보호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상상할 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학교만 보았을 때 일본의 학교로의 진학을 선택할 수 있지만 자신들 뿌리를 알기 위해 조선학교를 선택하고 그 뿌리를 배우겠다는 것이 아이들의 부모의 의도였습니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그들을 지원하지 않는 각국의 정부들에게 화도 났습니다. 그들을 지지해 대신 성명 운동을 펼치고 소외된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일본 오사카 교구의 사람들 이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내는 소리에 힘이 되어주는 것을 오사카 교구의 많은 분들이 힘써 주고 있었습니다. 이밖에도 위안부 문제와 같은 전쟁 피해국들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들 이었습니다. 나 자신이 그들 앞에서 작아졌습니다. 예수님이 소외된 민중을 돌보아 주며 그들이 편이 되어주신 것과 같이 그들은 작은 예수의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사카 교회 사람들의 열의를 보면서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일정 속에서의 프로그램들과 홈스테이 그리고 일본교회에서의 예배에 이르기 까지 오사카 교구의 손님에 대한 손님맞이는 인상 깊고 생각할 수 있는 이상을 넘어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완벽한 프로그램 이었습니다. 그들은 소소한 말들을 기억하여 끝까지 챙겨주고 그들이 준비한 것 외에 우리가 원하는 무엇이 있으면 그들은 신중하게 이야기를 거처 그것을 최대한 수용해 주고 배려해 주었습니다. 매일 밤에 이루어지는 대화는 자신의 소견을 확실하게 주장하는 자리로써 교류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정말 영양가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일본 교회의 사고와 생각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배우며 느끼기에 3박 4일의 시간은 짧은 듯 했었지만 그들이 보여준 프로그램의 완성도에 의해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서로의 좋은 점을 배우기에 너무나도 좋은 교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함께 하나님 나라를 확장함에 있어서 서로에게 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인 주일의 마지막 밤이 되었을 때 나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고 때문에 돌아가서 다음에 있을 교류를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모두 꼭 한국에 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잘 준비된 프로그램으로 그들을 맞이하고 싶었습니다.